이면세계현실의 뒤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ABOUT ARG

ARG가 뭔데?

일본 게임을 번역하다가 쓰게 된 소개글

요즘 일본 ARG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한 게임을 한국에서도 즐기는 사람이 늘었으면 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소개하려니 먼저 설명할 게 있네요. ARG가 뭔지부터요.

ARG는 Alternate Reality Game의 약자로, 한국어로는 ‘대체현실게임’이라고 부릅니다.

이름만 들으면 VR 같은 걸 떠올릴 수도 있는데, 여기서 소개하려는 게임은 조금 다릅니다. 홈페이지를 읽고 검색하거나, 손에 들어온 물건을 조사하면서 이야기를 알아가는 방식입니다.

검색하고 문서를 읽는 게 게임이라고?

웹으로 하는 작품을 가정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어떤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직원 소개도 있고, 공지사항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지에 적힌 날짜와 직원의 퇴사 날짜가 맞지 않습니다. 이미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그 뒤에 작성한 문서가 있는 겁니다.

단순한 실수인지 궁금해서 그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봅니다. 다른 기록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생깁니다.

실제 작품의 줄거리는 아니고, 진행 방식을 보여주려고 만든 예시입니다. 이런 게임에서는 글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찾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일이 플레이가 됩니다.

회사와 사건은 허구여도 홈페이지는 실제로 열어볼 수 있습니다. ‘검색한다’는 선택지를 누르면 주인공이 대신 조사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검색어를 생각해서 넣는 거죠.

실제 사례로는 제4경계의 《카가미노 특수소년갱생시설》이 있습니다.

공식 소개에 따르면 시설 홈페이지에서 눈에 띄는 단어를 찾고, 사이트 안에서 검색하며 자료를 조사하는 작품입니다. 브라우저로 진행하고, 혼자 또는 여러 명이 시간제한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카가미노 특수소년 갱생시설
카가미노 특수소년 갱생시설

이런 웹 작품도 ARG의 한 형태입니다. 아래에 소개할 예전 프로젝트 중에는 실제 전화나 장소를 이용한 것도 있습니다.

제4경계가 쓰는 ‘일상침식’이라는 말

일본의 창작 집단 제4경계(第四境界)는 자기들이 만드는 ARG를 ‘일상침식 게임(日常侵蝕ゲーム)’이라고 부릅니다. 공식 소개에서는 ‘의태’와 ‘침식’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합니다.

이 표현은 《사람의지갑(人の財布)》을 보면 조금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 작품은 지갑을 내용물째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안에 든 학생증이나 영수증 등을 조사하고, 관련된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주인에 대해 알아갑니다. 작품에는 이메일을 이용한 소통도 포함됩니다.

게임을 주문했는데 남의 지갑처럼 만들어진 물건이 오는 겁니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작품과는 시작부터 다르죠.

여기서 말하는 ‘일상침식’은 제4경계가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ARG 전체가 반드시 같은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아도 되겠습니다.

사람의지갑
사람의지갑

SIM3는 어떻게 설명할까

SIM3의 공식 소개에서는 웹을 이용해 참여자가 이야기 안에 관여하는 체험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작품으로는 《Vtuber 실종사건》 등이 있습니다. 공식 작품 목록에 따르면 실종된 VTuber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가상의 연예기획사 홈페이지를 조사하는 웹 미스터리입니다.

Vtuber 실종사건
Vtuber 실종사건

제4경계와 SIM3의 생각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아래에 적어둔 각 공식 소개를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여기서는 두 곳의 소개와 작품 예시만 짧게 다뤘습니다.

예전에는 어떤 ARG가 있었을까

지금 소개한 일본 작품들보다 훨씬 전에도 ARG는 있었습니다.
영화나 게임, 음악과 연결된 프로젝트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The Beast》 — 영화의 단서를 인터넷에서 따라가기

2001년 영화 《A.I.》와 연결된 프로젝트입니다. 피버디상의 작품 소개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부문의 소규모 팀이 제작했고, 영화 예고편과 포스터에 단서를 숨겨뒀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은 가상의 웹사이트들을 찾아가며 이야기와 퍼즐을 접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영화 밖에 마련된 자료를 찾아보는 일이 이어졌던 겁니다. 피버디상은 여러 매체에 흩어진 이야기를 참여자가 조립하게 했다는 점을 이 작품의 성과로 설명합니다.

《I Love Bees》 — 공중전화로 듣는 이야기

2004년 《Halo 2》와 연결된 ARG입니다. 제작사 42 Entertainment의 소개에 따르면 벌을 다루는 웹사이트에 미래의 인공지능이 들어왔다는 설정이고, 이야기의 조각들을 공중전화로 전달했습니다.

I love bees
I love bees

웹사이트에서 시작한 일이 실제 전화를 받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앞에서 예로 든 홈페이지 조사와 비교하면, 같은 ARG라고 해도 진행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Year Zero》 — 앨범과 함께 만들어진 프로젝트

2007년 Nine Inch Nails의 앨범 《Year Zero》와 연결된 프로젝트입니다. 제작사는 USB 저장장치, 웹사이트, 전화번호 등을 활용했고, 그 과정이 별도의 공연으로 이어졌다고 소개합니다.

음악가인 트렌트 레즈너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것을 단순한 음반 마케팅으로 보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앨범을 알리는 장치이기도 했지만, 만든 사람은 음악과 함께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던 겁니다.

《Why So Serious?》 — 고담의 시민으로 참여하기

영화 《다크 나이트》 개봉 전 약 15개월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제작사 설명에 따르면 참여자들이 조커의 부하나 하비 덴트의 선거운동 지지자처럼 행동하며 고담의 사건에 참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전화번호나 GPS 좌표를 이용하는 활동도 있었습니다.

Why So Serious?

영화의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광고와는 참여 방식이 꽤 다릅니다. 관객에게 영화 속 인물과 연결된 일을 직접 하게 만든 사례입니다.

지금까지 든 예시는 ARG 역사 전체가 아니라,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입니다. 공중전화를 쓰는 작품도 있었고, 음악이나 영화와 함께 진행된 프로젝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ARG라는 이름만으로 플레이 방식을 하나로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면세계에서 소개하고 싶은 것

저는 일본 ARG를 재미있게 하고 나서 한국어로도 옮겨보고 싶어졌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게임이 있어도 일본어로 되어 있으면 시작하기 어려운 분들이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제작자와 이야기하면서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면세계에도 제가 해본 작품이나 번역한 작품을 하나씩 올리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ARG를 즐기는 사람이 더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는 게임이 있으면 계속 소개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한 자료

제작자의 설명은 해당 부분에 표시했습니다. 역사 사례는 제작사 소개, 인터뷰, 피버디상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앞부분의 회사 홈페이지 예시는 진행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가상의 상황입니다.

  • 제4경계 — 카가미노 특수소년갱생시설 공식 소개
  • 제4경계 — 공식 소개
  • 제4경계 — 누군가의 지갑 공식 소개
  • SIM3 — 공식 소개
  • SIM3 — 공식 작품 목록
  • 피버디상 — The Beast, A.I. Transmedia Experience (2001)
  • 42 Entertainment — I Love Bees, WIRED — 2004년 당시 보도
  • 42 Entertainment — Year Zero
  • WIRED — 트렌트 레즈너 인터뷰, 2007년 12월 20일
  • 42 Entertainment — Why So Serious?